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는 카세트 테이프가 사장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어학 수험생과 노년층 때문에 여전히 카세트 수요가 있었지만, 어학 교재 음원이 MP3로 대체되고 "효도 라디오"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사실상 사장되었다.
수 년 후에는 삐삐, 플로피디스켓 등과 함께 박물관의 한 구석을 차지할 듯하다.
100년이 더 지나면 USB메모리, 아이패드가 박물관에 전시될 수도..
새천년 첫 해에 구입한 마이마이 카세트. 모델명은 MY-V20이다.
15만원정도를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고딩 시절에 친구들 열에 아홉은 파나소닉, 아이와, 마이마이, 아하프리 워크맨을 갖고 있었다.
몇 개 없는 단자와 버튼들.
마이마이는 대체로 서민들이 많이 구입했다.
요즘은 일본 가전제품의 명성이 예전같지 않지만, 당시 일제 하이엔드 워크맨들은 음질이나 내구성이 국산 제품보다 한 수 위였다.
리모컨 달린 이어폰은 분실했다.
마지막으로 실사용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본체에 붙어 있는 버튼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난독증세가 있었던 나는 MP3 플레이어 기능이 내장된 줄 알고 구입했다.
알고 보니 카세트 테이프와 MP3 플레이어가 되는 '복합기'가 아니라, 컴퓨터의 MP3 사운드를 테이프에 녹음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MP3를 공테이프에 녹음해 봤는데 음질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테이프가 다 거기서 거기지..
청취 가능한 라디오 주파수를 자동으로 잡아주는 기능이 있지만,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 곳에서는 엉뚱한 주파수가 자주 잡혀서 별 쓸모는 없었다.
이 마이마이가 출시되었던 시점에는 (1999년경?) 스티커 사진이 유행했다.
테이프를 장착하면 가려서 보이지도 않을 건데 삼성은 왜 이런 바보같은 시도를 했을까?
번외: 데뷔 초기 최수종의 마이마이 광고...
초창기 마이마이는 무시무시한 무게와 크기를 자랑했다.
에어로빅 할 때 저걸 차면 운동량 꽤나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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