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전신 PDA.
PDA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 제이텔(jTel)이 출시한 셀빅(CellVic) 시리즈가 인기가 꽤나 많았다.
CF를 엄청 방영해서 PDA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 듯.
(난 셀빅만 들고간다!)
이후 경영이 악화되어 코오롱이 인수했지만, 실적이 신통치 않았고 한동안 홈페이지만 남아있다가 최종 부도처리되었다.
한동안 유저 커뮤니티(kcug.net)가 존속되었지만 이마저도 증발되어 버려 자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나의 첫 PDA 셀빅 XG. 지금은 박스만 남아 있다.
셀빅 XG의 스펙은 아래와 같다. 요즘 스마트폰 스펙과 비교해 보면 당황할 수 있다.
이런 스펙의 PDA를 처음 득템했을 때 286 컴퓨터가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2004년 연말에 구입해서 한 2년 가까이 사용했었다.
거의 대부분의 휴대폰이 컬러화면으로 출시되었던 시점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피처폰들에 비해 이 흑백 PDA가 꿀릴 건 없었다.
온갖 게임들을 공짜로 다운받고, 텍스트 파일도 담아볼 수 있고, 메모도 되고, 사전 기능도 괜찮았다.
피처폰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죄다 가능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다만 무전기같은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하 사진의 출처는 지금은 폐쇄된 백**님 홈페이지**
좌측은 셀빅XG, 우측은 셀빅Dx라는 모델.
우측 셀빅 Dx와 자매품 셀빅아이는 초록색 빛이 나는 계산기틱한 액정이 탑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셀빅 XG는 가독성 좋은 회백색 16그레이 액정으로 교체되었다.
비록 흑백 액정이지만 장시간 화면을 보아도 요즘 스마트폰만큼 눈이 피로하지 않다.
지금도 텍스트뷰어 용도로는 나쁘지 않다.
셀빅 XG 모델 좌측 상단에 NATE 마크가 있지만, 당시에는 모바일 웹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별 쓸모는 없었다.
웹브라우저가 내장되어 있지만, 익스플로러가 대세였던 시절 일반 웹페이지에 접속하면 폰이 뻗어버렸다.
게다가 당시 데이터 요금은 1메가만 사용해도 수천원대였다.
우측의 셀빅Dx는 AA배터리 두개로 작동된다.
측면, 후면 사진.
요즘 스마트폰들과는 달리 송화기와 수화기는 기기 뒷면에 있다.
후면 상단의 전화모듈은 MP3 플레이어(128MB)나 카메라 모듈로 교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두 개의 모듈을 사용할 수 없어서 MP3를 청취하려면 통화 불능을 감수해야 했다ㅠ
이듬해 요피 3500이라는 PDA폰을 획득하면서부터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셀빅의 전화기, 문자 앱.
당시에 폴더폰보다 훨씬 많은 메시지를 저장할 수 있었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따지면 앱 서랍? 홈 런처?
기본 탑재된 런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들 윈도우 형태의 런처를 사용했다.
국내 앱 개발의 시초는 아마도 이 시절부터였던 듯.
제조사인 제이텔에서 어플 경진대회도 열었고 이런저런 어플들이 출시되었다.
텍스트 뷰어 쿨뷰(훗날 셀북으로 변경), 알바가자(비주얼드, 애니팡 같은 게임)가 인기가 많았고,
지문인식시스템(페이크 앱), 팔 흔들기 운동(적외선 포트 원리 이용) 등 기괴한 앱도 있었다.
자체 셀빅 OS를 내장한 순수 국산 PDA 셀빅.
셀빅 OS는 완전 국산 OS는 아니고, 팜 (Palm) OS를 커스터마이징했다.
하지만 셀빅 OS는 범용성이 떨어졌고, 멀티미디어에 취약했다.
셀빅 XG 이후 컬러화면을 탑재한 마이큐브도 출시하고 Windows CE를 탑재한 n110도 출시했지만 실패;
이후 PDA와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는 PocketPC(윈도우모바일의 전신)가 잠식해 버렸다.
하지만 영원히 최강자일 줄 알았던 윈도우 모바일(윈모)마저도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 처참하게 발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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